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쥘 비앙키 (문단 편집) == 사고와 사망 == >쥘, 크리스티네, 그리고 그의 형제자매인 톰과 멜라니에의 부모는 쥘이 니스의 [[https://www.chu-nice.fr/|파스퇴르 병원]]에서 사망했음을 알린다는 것에 매우 큰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쥘은 항상 그래왔듯이 끝까지 싸워보려 했으나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 일가는 형언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 >[[https://en.wikipedia.org/wiki/Jules_Bianchi#Death|그의 가족의 정식 발표문.]] || [Youtube(8l4i_fiC0yc)] || || 관람객 카메라로 찍힌 비앙키의 사고 상황.[br] '''충격적일 수 있으니 주의 바람.'''[* 영상에서 마샬이 그린 플래그, 즉 경기 재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사고가 발생한 마샬 포스트의 위치상 이전 마샬 포스트에서 옐로 플래그가 나오고, 사고현장에 해당하는 마샬 포스트 이후 구간에서 경기를 재개해도 좋다는 신호다. '''즉 해당 마샬은 잘못한 것이 없다.''' 트랙터가 해당 구간에서 벗어나 자우버를 들어올려 나오고 있었으니 해당 마샬 포스트 구간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가속해도 된다는 것. 실제로 그린 플래그가 나온 이후 약 10초 후에 비앙키의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지적받는 것은 FIA의 대응으로, 태풍으로 트랙 상태도 좋지 못한 상황에서 트랙터까지 나와 수습하기 시작했을 때에 바로 세이프티 카를 내보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후술되어 있듯이 일본 대회를 강행한 점과 세이프티 카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 그러나 모나코 이후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레이스 도중 사고로 리타이어한 자우버 소속 [[아드리안 수틸]]의 차량을 수습하던 리커버리 차량과 빠른 속도로 충돌, 머리를 심하게 다쳐 급히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보통 [[F1 레이스 카]]는 웬만한 사고에서도 드라이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장치들이 많지만, 차량이 리커버리 차량 (정확하게는 [[캐터필러(기업)|캐터필러]] 910H [[로더|휠 로더]])의 후방 엔진룸 밑으로 들어가면서 그대로 헬멧을 강타당해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그 날 일본 그랑프리는 즉각 중단 후 마무리되었다.[* 태풍 판폰으로 인한 폭우가 원인이다.] 이 때 당시, 사고 직후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후송용 헬기가 뜨지 못해 엠뷸런스에 비앙키를 태운 다음 병원에 후송'''했고, 그로 인해 결정적인 [[골든아워]]가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따라서 무리해서 일본 대회를 강행한 FOM 측은 이후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계각층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실제로 쥘의 유족들은 [[마러시아 F1 팀]] 및 FIA 포뮬러 1 운영위원회에게 소송을 걸었다.] 어떤 스포츠에서라도 사고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며, F1의 경우는 큰 사고가 발생할 경우 드라이버가 중상을 입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고려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드라이버들은 모두 표정이 굳어버렸고 서킷 안의 분위기도 심각했으며 레이스는 더 이상 속행되지 않을 것이란 메세지와 함께 방송으로 보기에도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이후 여러 보도가 있었지만 쥘은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고 이후 일본에서 고향 니스로 옮겨져 치료를 받으며 희망을 기다렸으나 2015년 7월 17일 고향 니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수틸은 본인의 사고에 영향을 받아 비앙키의 사고가 일어난 것에 죄책감으로 매우 괴로워했으며[* 수틸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앙키의 사고가 일어났고, 사고가 난 비앙키의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다.] 이후 비앙키의 장례식에도 참석해 비앙키의 관을 운구해주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비앙키의 팀이였던 마러시아는 쥘에 대한 배려라는 의미로 그 다음 경기였던 홈그라운드 경기인 러시아 GP에서 쥘을 대신할 리저브 드라이버를 참가시키지 않고 팀메이트였던 [[맥스 칠튼]]만 참가시켰다. [[파일:jules3.jpg]] [[장례식]]은 2015년 7월 21일 고향인 니스 대성당에서 치러진 후 [[화장(장례)|화장]]되어 모나코에 위치한 [[몬테 카를로]]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 때 [[젠슨 버튼]], [[루이스 해밀턴]], [[파스토르 말도나도]] 등을 비롯한 그의 동료 드라이버들이 그와 함께했다. 그 중에 [[제바스티안 페텔]], [[아드리안 수틸]], [[로맹 그로장]], [[펠리페 마싸]]는 비앙키의 관을 같이 운구했고, 말도나도와 마싸는 흐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F1 관계자와 팬들은 모두 깊은 슬픔에 빠졌고 요절 직후 열린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그동안 함께 레이스를 했던 동료 드라이버들은 레이스 시작 전 그리드 위에 다같이 모여 자신들의 헬멧들을 비앙키가 쓰던 헬멧 주위에 모아놓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원을 그리면서 추모하였다. [[파일:jules1.jpg]] >'''Merci Jules, Cette Victorie est pour toi. You always Be in our Heart. We Know that sooner or later you would have been part of this team. Grazie guys. ''' >'''고마워 쥘, 이 우승은 너를 위한 거야. 넌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을거야. 우리는 너가 곧이든 나중이든 이 팀의 일원이 될 것을 알고 있었어. 고마워 친구들.''' >---- >[[제바스티안 페텔]], 2015년 헝가리 GP 우승 후 비앙키의 엔트리 번호 17번은 [[영구결번/스포츠#s-3.8|F1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